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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사연

두 눈 속에 괴어 있는 눈물

  • 작성일 : 2010-08-30
  • 조회수 : 4685
  • 작성자 :관리자

두 눈 속에 괴어 있는 눈물

 

 

내 주위에 있는 사람 대부분은 울보다. 이들은 내가 막 태어나는 순간에도 훌쩍거렸다. 이조백자 같던 할머니는 고대하던 금줄이 아니라 섭섭해 울었고, 몸이 허약했던 엄마는 배가 아파서 울었다. 눈도 뜨지 않은 갓난 아이였지만,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 내 주위에는 울보가 참 많을 것 같다고 

그랬다. 민원인의 첫 마디는 한 시간 전에 통화한 사람인데요…” 였다.
젖은 솜처럼 물기가 가득 배어든 음성은, 서성거리듯 약간의 머뭇거림이 남아있는 말투였다. 민원인과의 상담을 그렇게 시작되었다.

내가 상담전화를 받기 전, 이미 민원인은 콜센터 상담사를 통해 보건소로 연결이 되었는데, 그곳에서 제대로 도움을 받지 못한 채 다시 전화하신 상황이었다.

처음엔 단순 의료사기 민원인 줄 알았다. 하지만 민원인의 얘기를 들으며 내 가슴이 점점 뭉클해졌다.

 

제 아버지는 참전유공자이십니다.
건강이 악화되셔서 보훈병원 응급실로 가서 X-ray를 찍었습니다.
담당의사는 폐렴 증세가 있다고 하면서 집에서 가까운 위탁병원을 소개해 줬습니다.
우리 집은 경기도 광명시에 있고 보훈병원은 서울시 천호동에 있으니,
집에서 가까운 병원에서 치료받으시는 게 아버지께 부담이 적을 것 같아
소개받은 위탁병원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 병원에서는 흉부외과가 없다면서 접수를 거부했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경기도에 있는 위탁병원 몇 곳을 수소문하다가,
다행히 병원 한 곳에서 2주 정도 진료를 받으실 수 있다는 답변을 듣고
119
의 도움을 받아 아버지를 병원으로 모셨습니다.
하지만, 막상 접수를 하려고 했더니
병원장이 우리는 손을 못 대니, 대학병원으로 가셔야 한다.’ 면서 진료를 거부했습니다.
당장 편찮으신 아버지를 모시고 또 다른 병원으로 가야한다는 생각에 너무 막막했습니다.
진료를 부탁한다며 실랑이를 벌였지만
결국 아버지를 모시고 다시 천호동 보훈병원으로 왔습니다.
얘기가 길어져 미안합니다. 근데요나 좀 도와주세요… ”

 

아주 잠깐, 우우~~ 하며 귀가 먹먹해졌다. 목울대를 젖은 수건마냥 꼬옥 짜면 민원인의 슬픔이 수화기를 타고 샘처럼 흐를 것 같아서였고, 생의 절실한 순간을 아무 것도 아닌 내게 의탁하시는 민원인이 안타깝게 느껴졌기 때문이기도 했다.
정부대표전화 110 상담사로 입사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내겐 너무 벅찬 상담이었다. 몸집이 커다란 어른 곰 한 마리가 뚜벅뚜벅 다가와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데 나는 가만 엎드려 죽은 척 해야 할까, 아니면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하게 굴어야 할까순간 오만 가지 그림을 머릿속에 그렸다 지웠다

그러다 퍼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상담이라는 것에 답이 있을까? 살다 보면 같은 길을 걸어도 어느 날은 무사하고, 어느 날은 길에서 비를 맞을 수도 있고, 어느 날은 돌에 채이거나 미끄러져 넘어질 수도 있다. 그럴 어떤 사람은 곧장 병원으로 직행하고, 어떤 사람은 근처 약국에서 간단히 응급처치만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툭툭 털고 일어나 무슨 있었냐는 집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이렇게 생각하니, 상담을 진행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식사는 하셨어요?

조금은 뜬금없는 질문이었지만, 나는 민원인께 이렇게 물었던 것 같다. 당장 관련 부서를 알아보고 일 처리를 도와드릴 수도 있었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런 상담이라면 일정량의 업무 지식을 가진 누구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민원인은 하루 종일 여기저기서 차이다가 지친 마음으로 110번에 전화를 하신 분이다. 민원인의 지친 마음을 존중해 드리고 싶었고, 남들이 알지 못하는 깊은 상처를 보듬어드리고 싶었다. 그런데

눈물을 몰고 다니는 운명의 소유자답게, 나는 의도와는 다르게 민원인을 울리고 말았다. 그저 식사하셨는지를 물었을 뿐인데, 수화기 너머로 민원인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늙고 병든 부모가 제 살을 다 토해내어 자식을 위해 고치를 짓고, 자식은 그 안에서 보호받으며 살다가 고치에서 빠져나왔을 때, 낡고 헤진 고치 안에 남아 있는 부모를 마주한 순간, 다 큰 어른도 울 수밖에 없다는 것을 나는 처음으로 알았다.

민원인의 아픔을 건드린 것 같은 미안한 마음에, 나는 30분 내로 다시 전화드리기로 하고 1차 상담을 마쳤다.

그동안 나는 국가보훈처 담당 부서와 담당자를 확인하여 민원인의 상황을 설명했다. 담당자는 곧바로 민원인께 전화를 드렸고, 즉시 민원인의 아버지는 보훈병원에서 진료를 받으실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상담이 끝난 알았다. 그런데 다음 , 나를 찾는 민원인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확인해 보니, 어제의 그 민원인이었다. 혹시나 또 다른 문제가 생기신 건 아닌지 걱정을 하며 전화를 드렸다.

아버지께서는 6인실에서 치료 중이신데, 사회사업실에 간병인을 요청할 겁니다.
모두 상담사님 덕분이에요.
110
상담사님과 통화 후, 어려웠던 일이 다 잘 풀리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내게 밥을 먹었냐고 신경써 준 사람도 처음이었고,
, 그래도 나를 걱정해 주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구나, 이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어제 너무나 고맙고 감사한데, 인사를 제대로 못 했네요.
가게에 왔다가 상담사님 생각이 나서 과자와 초콜릿을 보내드리려고 하는데, 괜찮죠?"

일부러 감사 전화까지 해 주신 민원인께 오히려 내가 더 감사를 드려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우리는 민원인께 과자나 초콜릿 같은 걸 받으면 큰일납니다. ^^*” 하며 짐짓 과장된 답변을 드렸다. 이렇게 민원인과 따뜻한 대화가 한참 동안 이어졌다.

민원인과 전화를 끊은 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착함을 감추고 아무렇지 않게 사람들 사이에 섞여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고달프고 서러운 일일까? 사람에게는 하루하루가 1 1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60, 100, 240 그런 식으로 지워지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그건 얼마나 무시무시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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